<탄소중립위원회 사퇴 선언문>
청소년기후행동은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 민간 위원직 공식적인 사퇴를 선언합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을 대표하여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 국제협력분과 위원으로 참여했던 오연재 활동가는 공식적으로 탄중위 위원직을 사퇴합니다. 그리고 청소년기후행동은 이제 비민주적이고 당사자들을 배제하는 현재 탄소중립위원회의 논의 방식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오랜시간을 기후위기로 인해 점점 더 커지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감내하며 살아가야하는 청소년,청년입니다. 이미 기후위기는 통제불가능한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고, 기후위기로 인한 영향은 살인적인 폭염과 홍수, 생태계 붕괴와 해수면 상승 등의 강도높은 재난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위기가 식량,주거, 빈곤, 노동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극단적인 불평등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미 과학은 이대로 기후위기가 계속 심각해지면 우리가 안전한 일상 따위는 없는 파멸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기후위기의 영향으로부터 감당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사회 시스템을 뒤엎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건 개인의 작은 실천으로만 해결이 가능하거나, 단지 입으로만 열심히 기후위기를 외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강력한 의지와 결단력을 가지고 정치의 변화가 뒤따라야만 합니다.
기후위기라는 의제를 공론화하고,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국회의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이끌어낸 것은 거리에서 또 각자의 자리에서 행동한 수많은 청(소)년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외침이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전문가들이나 정치인들에 맡기고 기다리는 것이 아닌 청소년, 청년들이 지금 당장 변화의 주체로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외친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우리는 기후 파국으로 인한 더 많은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갈 당사자임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도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기 전까지는 논의에서 배제되어 왔습니다. 제대로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도 반영되지 않은채로 시민의 목소리와 삶은 배제되어왔고, 전문가들과 정책 결정권자들은 닫힌 방안에서 지금 당장의 이익관계만을 고려한 논의를 해왔습니다.
지난 2020년 말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정부 위원회에서 민간 위원의 참여 연령이 낮아지고, 저희에겐 청소년 당사자로서 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실질적인 정책 논의테이블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전할 기회 자체가 애초에 없었기에 ‘기회의 공정’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미래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할 수 있는 자리로 탄소중립위원회에 참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탄소중립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며 이러한 기회의 공정 조차도 기후위기 대응의 제대로된 논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사자들은 여전히 배제된 채로 정부와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작동되는 거버넌스는 여전했습니다. 탄소중립위원회가 치열하게 논의를 해나간다고 발표한 것과 달리, 위원회 논의의 결과로 나온 탄소중립시나리오는 정말 처참했습니다.
IPCC 6차 평가보고서(WG1)는 가장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결과들을 모아 2050년 탄소중립은 아무리 못해도 달성해야만 하는 가장 최소한의 목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을 0으로 만든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유지하면서 말로만 이룰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탄소중립위원회의 탄소중립시나리오는 지금까지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탄소배출을 하도록 만든 사회 시스템’은 어떻게든 그대로 두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수단'이 무엇이든 일단 ‘탄소'만 줄이면 된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에너지수요'를 줄이지도, 지금의 사회 시스템을 바꾸지도 않고, 오직 불확실한 기술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을 문서상에서만 하는 것 같은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1, 2안은 탄소중립 달성 실패를 담고 있으며, 석탄발전을 포함한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을 그대로 유지하는 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 채 기존의 정치적 논리나 기업들의 현재에만 집중된 경제적 논리에 갇혀 막상 해야하는 것들(가장 가능하며 현실적인 안들)에 대해 ‘어렵다’, ‘현실적이지 못하다', ‘타협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들을 반복합니다. 탄중위는 ‘수 많은 이해관계자가 있고, 합의 지점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어렵다'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탄중위의 시나리오처럼 무책임하고 안일하며 협소한 논의로 해결될 수준이었다면 지금 기후위기를 ‘위기’라고 부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위기라 이름붙여 다루는 심각한 문제 앞에서 어렵다는 말로 당사자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붕괴입니다.
탄중위는 탄소중립시나리오에 대한 시민의견수렴을 위해 탄소중립시민회의 및 협의체 구성을 했다고 밝혔지만, 이러한 구성은 기후위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우리들의 삶을 대변하고 반영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정부가 이렇게 비민주적이고 대책없는 논의를 이어가는 동안 실제 기후위기로 인한 전환의 과정안에서 가장 많은 영향, 피해를 입게 될 이들의 목소리는 모두 배제되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은 여전히 전문가들의 현실성 없는 위기 인식 앞에 평범하고도 안전한 삶을 살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지금의 민주주의는 특별한 사람들의 참여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논의에 참여할 수 없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많은 당사자들은 보편적 평등에서 누락되어 왔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시민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동등하지 않은 만큼, 탄소중립과 이를 위한 전환의 대원칙을 잘 설정하는 것은 분명 필요합니다. 위기를 막고 생존 가능한, 인간다운 삶을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막대히 배출하며 성장해온 지금의 사회 구조 자체를 전복시키고 실질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고 전환하며 어떤 누구의 삶도 배제되지 않는 그런 전환이 필요하니까요.
현재의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기 전까지는 힘이 없는 것, 당사자로 존재하지 못하고 그저 피해대상으로 여겨지는 것, 타자에 의해 정의되는 것, 논의에서, 사회에서, 시민에서 배제되는 것. 이 모두 동의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환의 과정에서 당장 기후위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주체들이 ‘피해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주체 스스로 직접 이야기하고 기후위기 대응에서 전환의 원칙을 함께 만들어가야합니다.
기후위기가 시민들의 평범한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상황에서 정치적 권력의 우위에 있다는 이유로 위기를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날려버리고, 책임을 미래로 떠 넘기며 우리의 삶을 짓밟을 자격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탄중위에 참여하는 위원들은 우리도 당사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이 문제에서 전문적인 연구를 해오고, 정치적 권력을 쥔 이들만이 당사자는 아니며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후위기 대응이 '현실적인 이유'들로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여러 이해관계자들과의 갈등과 타협을 목표로 만들어진 위원회에서 전문가가 아닌 당사자가 있을 공간은 없습니다.
애초에 시민들이 누구나 모여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부가 듣지 못한, 혹은 듣지 않는 각자의 이야기를 공론화시키고 사회에서 지워버리지 못하게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동등하지 않은만큼, 숙의 과정에는 기후위기로 삶에 더 직접적이고 큰 영향(직접 기본권을 위협받는)을 받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확보되어야만 기후위기 상황의 심각성을 대표할 수 있고, 최소 1.5℃ 수준에 대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정부가 논의의 장을 이렇게 제한적이고 비민주적으로 꾸리면 제대로 된 변화도 논의도 가능할리가 없습니다. 자신들이 짜놓은 판 안에서 숙제하듯 이야기해서 나온 실효성 없는 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국회(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나 정부가 제기하는 안들(탄소중립시나리오, 2030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등) 모두 엉터리 논의로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해결책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들 안에서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기후위기로 인한 큰 재난의 피해자여서 또는 죽고 피해를 입어야만 주목하는 것이 아닌 당사자 모두가 논의 테이블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후위기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우리들의 이야기가 반영되고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입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공식적으로 소속 활동가의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직 사퇴와 함께 비민주적이고 시민을 배제하는 탄중위의 논의구조를 거부함을 선언합니다.
이제 기후위기를 넘어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사회 구조로의 전환을 위해 기존 논의의 틀을 깨고 시민이 직접 만드는 시민의회를 함께 만들려합니다.
2021.08.26
청소년기후행동